며칠 전, 앤티크를 보고 나서 여동생님과 닭갈비를 먹고 있는데 동생님 왈.
"그 감독, 앞으로도 동인영화 계속 찍을거래."
동.인.영.화?? 라고?!!!!!!
뭐, 16살이지만 기억력은 6살에 가까운 덤벙거리는 여중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정확도가 심히 떨어지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저 비슷한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인 듯 하여 나는 새삼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봤다.
여고괴담2,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나오길래, 어머나, 정말 이 감독에게는 뭔가 있구나!!를 외치며 쾌재를 불렀다. 여고괴담2는 우연히 TV에서 방송해주던 것을 봤는데, 공포영화를 초큼 좋아라 하는 내가 교복차림의 여고생 귀신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봤다가 이영진이라는 느므느므 매니쉬하고 시크한 여배우가 박예진과 이루지 못할 풋풋하지만 가슴 아픈 사랑을 연기하는 것에 눈이 발랑 뒤집혀 한참 고생했던 게 기억 났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보지는 못했지만 어디서 들은 풍월에 의하면 게이 부부 비스 무리 한 게 나온다는 그런 기억이 남아 있어서 이런 걸 잘도 기억한다 당장 봐야겠구나 싶어 벼르고 있던 찰나.
오늘 대략적인 스케줄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정리를 한 다음에 영화를 봤다. 한국 영화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제목에 멜로라든지 로맨틱한 그런 필이 나면 자동반사로 안 보는 데, 꾸욱 참고 봐야지, 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달래가며 영화를 틀었더랬다.
그런데 이게 웬일?!
와, 내가 러브 액츄얼리를 보진 못했지만, 민규동 감독이 이 영화를 찍고 러브 액츄얼리와 비교 당하며 혹평과 호평을 왔다 갔다 했다던데, 나 원래 이런 로맨틱한 장르 싫어하거든요? 근데 교묘하게 이래저래 사람들의 삶이 얽혀 있는 거랑, 적당히 닭살스러우면서 애교스러운 주인공들이랑 사연이 사연인지라 눈물, 콧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그런 삶의 심각한 문제들을 너무 적나라하게 부각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가슴에 와닿게 만들어서 보는 내내 실실 바보처럼 쪼개다가 마지막엔 살짝 눈물 찔끔 흘렸다. 아, 인생은 아름답구나? 아니, 끔찍한 인생이라도 제법 살만 하잖아? 라는 생각이 절로 만들어지던 걸? 나 감동 먹어 버렸어. 흑흑.
말랑말랑하게 흘러가다가 점점 클라이막스로 치닫아 모두들 파경에 이를 지경으로 분노하고 힘들어하고 슬퍼하고 아파하더니 결국엔 다시 편안한 안식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뻔한 결말 같아 보이지만 가슴 놓였다. 아, 다행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임창정, 서영희 부부는 차암, 저런 부부 있으면 보기 좋겠네, 신랑 각시 저렇게 예쁘게만 살아주면 얼마나 좋아. 라는 생각이 들었고 엄정화랑 황정민 나올 때는 계속 웃기만 했다. 황정민 아저씨 진짜 연기 잘 해. 사실 이건 알고 있었고 엄정화가 오르가즘 느끼는 신음 소리 낼 땐, 나는 속으로 브라보를 외치고 있었다. 사운드 제대론데? 싶은 것이. 윤진서는 제대로 미친 년 역할을 해줬는데 내가 볼 땐 얜 가만히 있어서 저런 필이 난다. 절대 욕 아님. 좀 우울한 얼굴이랄까. 심각한 상이라서 이런 역이 아주 그냥 제대로 먹혀들어갔음. 정경호는 볼 때 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생각나서(...) 김수로랑 전혜진을 보면서는 둘이 잘 되려나? 싶었는데 그럭저럭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지어버렸고. 전혜진 같은 털털하고 성격 좋으면서도 화끈한 작가가 될 수 있다면 차암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천호진이랑 김태현, 이들이 바로 내가 풍월로 주워 들었던 게이 부부 였는데, 움하하하, 나름 임팩트 있는 것이 좋았다. 난 이렇게 양념 쳐진 것도 차암 좋더라. 게다가 천호진 아저씨 연기도 너무 좋았고. 김윤석 아저씨랑 사실은 그렇고 그랬는데 현실을 이기지 못한 둘의 안타까운 사랑이... 난 진짜 천호진 아저씨가 스웨터 뜯으면서 울 때 눈물이 핑 도는데, 결정타의 나레이션이 날 울렸다. '난 내 나름의 방식으로 널 사랑했다.' 크윽. 약을 찾으면서 기절해가는 천호진 아저씨 마음을 이해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는? T_T 우리 꼬꼬마들, 완전 기여운 자식들, 이런 두 꼬맹이 자식으로 두면 내가 소원이 없겠...지는 않겠지만 자식 농사 일차는 성공한 기분이 들 듯.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 현 아저씨가 오미희 아줌마한테 극장에서 프러포즈 할 땐 내가 다 눈물 나더라. 저렇게 멋지게 프로포즈 받으면 배 나온 짠돌이 늙은 아저씨라도 정말 남은 여생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물론 그 프로포즈 밑바탕엔 그만큼 사랑한다는 마음이 깔려 있으니 가능한 것이었겠지마안.
두 시간을 앉아서 꼼짝 않고 봤더니 엉덩이도 아프고 눈도 침침. 그래도 참 훈훈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훈훈한 영화로 안구에 습기 적혀 주는 것도 삶의 정화 차원에서 좋은 듯.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언제 오려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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